위급한 상황을 무전기로
화장실이 가고 싶다. 배도 고프다. 으슬으슬 추위가 느껴진다.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는 아내는 눕지도 먹지도 못하고 손전화만 으스러지게 잡고 안절부절 서성
일 텐데. 전화는 불통이다. 팜데일 방면에 일이 있어서 출장을 갔다가 늦은 시간에
귀가 길에 올랐으나 산길에 갇혔다는 소식이 무전기를 통해 들려온다. 밤을 뜬눈
으로 차에서 새고, 해 뜬 다음에 무선기로 HAM 멤버들에게 SOS를 친다. 아내에
게 전화로 자신의 상태를 좀 전해달라는 부탁이다.
10월 10일, 11일 이틀 동안, 포터렌치 지역 산불 상황을 실시간 중계하는 텔
레비전을 본다. 마침 무전기를 울리는 대화는 여러 회원들이 동참을 해서 상황을
파악하고 구조방법이 거론되고 있다. 재난, 재해 발생 시 요긴하게 소통이 가능한
무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아마츄어 래디오 HAM 클럽의 회원 중 한 사람이 직면한
문제다.
프리웨이가 차단되고, 우회해서라도 집으로 갈 수 있는 길을 택해서 엔젤레스
퍼레스트 산길로 들어선 것까지는 잘한 선택이다. 밤도 늦었는데 그 길에 들어선
차량들이 헤일 수조차 없다는 현실이 이해 안 되지만 혼자인 것 보다는 위로가 된
다. 결국 밤새, 산길은 끝이 안 보이는 차들로 꽉 채워진 파킹장 모양새다. 한참을
쉬다가 잠깐 움직여 이동을 하고 또 다시 긴 멈춤의 시간들이 반복되면서 밤이 떠
나고 해가 얼굴을 보인다.
다른 회원들이 잠에서 깨어 일상을 시작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다림 끝에 무전
기를 이용해서 회원들을 불러낸다. 주위가 산으로 둘러 싸여 전파가 뚫고 드나들
지 못하는 지역이다. 다행하게도 우리 무선협회 KARA의 repeter가 가까워서
우리끼리의 대화는 문제없다. 남자 회원들의 콜링에 볼일 없이 나서지 않는 평상
시 버릇대로 monitering 하면서 나는 잠자코 텔레비전의 화면만 주시한다. 역
시 가장 분주하게 누구에게나 응답하는 ET 회장님의 밝은 음성이 들린다. 의례적
인 아침인사로 시작 된 대화에, 생각지도 못했던 고립상태를 알리며 제일 먼저 무
소식에 애태울 가족에게 전화를 대신 부탁하는 다급함이 들린 거다.
불러주는 그 회원 아내의 전번을 나도 적어 내려간다. 누가 먼저든 전화부터 해
서 가족을 안심시켜야 한다. 이어지는 대화는, 비상시 그 지점을 통과할 수 있는
패스를 가진 회장님이 손수 필수용품들을 마련해서 출동하겠단다. 그 때 마침 텔
레비전 화면에 샌드캐년에 즐비하게 늘어진 차량들을 실시간 중계하는 헬기가 떴다.
결국 에어에 참가해서 내가 실시간 중계를 한다. 차량들이 이동하는 속도가 바
람직하니까 너무 걱정들 말자고, 저 차량들 속에 EY님 차도 있을 테니 곧 귀가 하
게 될 것이라고.
호된 두려움의 밤을 홀로 지내면서도 손에 쥔 무전기 때문에 안심하고 해뜨기
를 기다릴 수 있었을 게다. HAM 생활 20여 년 베테랑 회원이 당한 비상상태지만
우리 모두는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고 없이 닥치는 위급한 상황에 대처
할 방법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