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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A

제목:   내 인생에 관한 3가지 이야기

작성자: KF6YMF
Updated on 09/21/2010
Steve Jobs가 스텐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행한 연설문을 감동적이라 느껴 친구의 웹사이트에서 퍼왔습니다. Youtube.com에 가셔서 steve jobs를 찾으시면 연설하는 동영상을 보실 수도 있습니다.

내 인생에 관한 3가지 이야기

Steve Jobs (애플 컴퓨터 CEO)

저는 오늘 세계 최고 명문대학 중 하나인 이 대학의 학위수여식에 함께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이 제가 대학 졸업식에 가장 가까이 와본 겁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 인생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대단한 것이 아니고요, 그저 세 개의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삶에 의미를 찾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Reed College를 6개월간 다니다가 자퇴했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학교를 그만두기 전까지 청강생으로 18개월 정도를 더 머물렀죠. 그러면 왜 제가 자퇴를 했을까요?

이 야기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됩니다. 저의 생모는 나이 어린 미혼의 대학원생이었기 때문에 저를 입양 보내기로 결정했죠. 제 생모는 제가 대학을 졸업한 사람에게 입양되어야 한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태어나면 변호사 부부에게 입양되도록 모든 게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태어나자, 바로 마지막 순간에 변호사 부부는 여자 아이를 원한다고 결정한 것만 제외하고 말이죠. 그래서 대기자 명단에 올라있던 저의 양부모님은 한 밤중에 이렇게 묻는 전화를 받게 됩니다. "예상하지 못한 남자 아이가 하나 생겼는데 입양하시겠습니까?" 양부모님께서는 "물론입니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나 중에 제 생모는 저를 입양하기로 한 어머니가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는 것과 아버지는 고등학교조차 나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생모는 최종 입양동의서에 서명하는 것을 거부했죠. 몇 달 후에 저의 양부모님께서 저를 대학에 보내겠다고 약속을 하신 뒤에야 생모는 마음이 풀어지셨습니다. 이것이 제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리고 17년 후에 저는 정말로 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순진하게도 스탠포드 대학만큼이나 비용이 많이 드는 대학을 선택했죠. 노동자 신분이신 부모님께서 저축하신 모든 돈이 제 수업료로 쓰여지고 있었습니다. 6개월이 지나도 저는 비싼 수업료를 내면서 대학을 다니는 일에서 가치를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어떤 삶을 원하는지도 몰랐고, 또 대학이 그것을 알아내도록 어떤 도움을 줄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대학을 다니면서 그저 부모님께서 평생 모아오신 돈 전부를 축내면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을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고 믿기로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무척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제가 내렸던 최고의 결정들 주 하나였습니다. 자퇴한 순간부터는 흥미 없던 필수과목들을 수강하지 않아도 되었고 그대신 훨씬 더 흥미로워 보이는 과목들을 청강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낭만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기숙사 방이 없었기 때문에 친구들 방의 바닥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빈 코카콜라 병들을 모아 돌려준 댓가로 한 병에 5센트씩 받은 돈으로 음식을 사먹었습니다. 또한 제대로 된 한끼 식사를 얻어 먹으려고 일주일에 한 번, 매주 일요일 밤마다 마을을 지나 하레 크리슈나 사원(힌두교 사원)까지 7마일(11km)이나 되는 거리를 걷곤 했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호기심과 직관을 따라서 경험하게 된 많은 일들이 나중에는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이 되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그 당시에 Reed College는 아마도 미국에서 최고의 글씨체 강좌를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캠퍼스 곳곳에 붙은 포스터와 서랍의 표시들은 손글씨체로 아름답게 적혀 있었죠. 저는 자퇴를 해서 정규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배우기 위해 글씨체 수업을 듣기로 했습니다. 삐침이 있는 글꼴과 삐침이 없는 글꼴에 대해, 서로 다른 글자 조합들의 간격을 다양하게 바꾸는 것에 대해, 그리고 무엇이 멋진 활자체를 멋지게 만드는지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것은 아름답고 유서 깊고 과학으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예술적이고 정교한 것이었죠. 저는 그것이 매력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런 것 중에 어떤 것도 제 삶에 실제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에, 우리가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설계할 때, 그것은 전부 저에게 되돌아왔고, 우리는 그것들을 전부 맥(매킨토시) 안에 담아 설계했습니다.맥은 아름다운 글꼴을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만약 제가 대학에서 그 한 가지 강좌를 청강하지 않았더라면, 맥은 다양한 활자체와 비례적으로 간격이 조절되는 글꼴을 결코 갖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윈도우즈는 그저 맥을 베낀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어떤 PC도 그런 글꼴들을 분명히 갖지 못했을 겁니다. 만약 제가 대학을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그 글씨체 수업을 청강하지 않았을 것이고, PC들도 오늘날의 아름다운 서체들을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대학을 다닐 때에는 앞날을 내다보며 점들을 연결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후에 과거를 되돌아보니 그것은 너무나도 명확했습니다.

다 시 말씀 드리지만 여러분들은 미래를 미리 점칠 수는 없습니다. 그저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이해할 수 있을 뿐이죠. 그러므로 미래에 점들이 어떻게든 연결되어 이어질 것이라는 걸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본능이든 운명이든 삶이든, 운명이든 무엇이든 간에 무언가에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점들이 미래에 연결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여러분에게 자신의 마음을 따르도록 하는 자신감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런 자신감이 여러분을 탄탄대로에서 벗어나게 할 때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이 인생의 모든 것을 차이나도록 만들 것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행운아였습니다. 일찌기 제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을 발견했으니까요. 워즈(Steve Wozniak)와 저는 스무 살 때 부모님의 차고에서 애플 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고 10년 후에 애플은 달랑 두 명뿐인 차고에서 4,0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20억 달러 규모의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바로 전 해에 우리는 최고의 걸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었죠. 그때 저는 막 서른이 되었고, 그리고 해고를 당했습니다. 어떻게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해고될 수 있냐구요?

애 플이 성장하면서 우리는 저와 함께 회사를 경영해갈 매우 재능 있어 보이는 사람을 고용했습니다. 첫 1년 여 동안에는 모든 게 순조로웠죠.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미래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결구 우리는 갈라서게 되었죠.우리가 갈라서자 회사의 이사진은 그의 편을 들었습니다.그래서 제 나이 서른에 저는 ㅤㅉㅗㅈ겨났습니다. 그것도 아주 공개적으로 ㅤㅉㅗㅈ겨났습니다. 제 성년기 인생 모든 것의 중심이 되었던 것이 사라졌고, 저는 참담했습니다.

몇 달간은 정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저는 제가 이전 세대의 기업가들을 실망시켰으며, 바톤이 제게 전달되는 순간 그걸 떨어뜨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데이비드 패커드(Hewlett Packard 설립자)와 밥 노이스(Intel 설립자)를 만나 그토록 엉망으로 만든 것에 대해 사과하려고 애썼습니다. 저는 공공영한 패배자였습니다. 심지어 실리콘 밸리에서 아주 떠나려고 생각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무언가를 서서히 알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제가 하던 일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죠.애플에서의 일들은 그 마음을 조금도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저는 거절당했지만 여전히 제 일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결국 애플에서 해고된 일이 제 인생에 일어날 수 있었던 최고의 사건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성공에 대한 부담감은 모든 것에 대해 대해 조금은 덜 확신해도 되는 초심자의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바뀌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제 인생에서 가장 창의적인 시기로 자유롭게 들어가도록 했습니다.

그 후 5년 동안, 저는 넥스트(NeXT)라는 회사와 픽사(Pixar)라는 회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 아내가 될 멋진 여성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픽사는 잘 나아가서 세계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 스트리를 만들어 냈고,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애니매이션 스튜디오가 되었습니다. 놀라만한 반전으로 애플은 넥스트를 인수했고, 저는 애플로 되돌아왔습니다.그리고 우리가 넥스트에세 개발한 기술은 오늘날 애플의 르네상스를 이루어낸 중심에 있습니다.그리고 로렌과 저는 함께 멋진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저는 분명히 확신합니다. 만약 제가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지독히도 입에 쓴 양이었지만, 환자에게는 그런 약이 필요했다는 걸 압니다. 때로는 벽돌로 뒤통수를 얻어 맞는 것과 같은 시련도 있기 마련입니다. 신념을 잃지 마십시오. 계속해서 제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해준 유일한 힘은 제가 하는 일을 사랑한 데 있다고 확신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사랑할 만한 일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은 연인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work)에도 적용되는 진실입니다. 그 '일'은 여러분 인생의 큰 부분을 채울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대단하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 아직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계속 찾으십시오. 안주하지 마십시오. 마음으로 하는 모든 일이 그렇듯이, 여러분이 그것을 발견하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훌륭한 관계도 다 그렇듯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속 찾으싶시오. 안주하지 마시고요.

나의 세 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제가 17세 때 이렇게 시작되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 하루를 마치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산다면 언젠가 당신은 분명히 옳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 말에 감동을 받고, 그때부터 지나 33년간 저는 매일 아침 거울을 들여다보며 제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내가 하려던 일을 과연 하기를 원할까?" 그 대답이 여러 날 동안 계속해서 '아니오'일 때 마다 저는 무언가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제가 아는 한, 인생의 큰 결정들을 내리도록 도와주는 가장 중요한 도구는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걸 기억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외부로부터의 기대, 자존심, 그리고 장애물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이러한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 오직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을 남긴 채 떨어져 나가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걸 기억하는 것은 무엇인가 잃을 게 있다고 생각하는 함정을 피하는 제가 아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잃을 게 없습니다. 마음의 소리를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약 1년 전에 저는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오전 7시 30분에 단층촬영을 받았는데, 췌장에 붙어있는 종양이 명확하게 보였습니다. 저는 췌장이 무엇인지조차 몰랐습니다. 의사들은 거의 치유 불가능한 종류의 암이라고,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 정도밖에 살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제 주치의는 집에 돌아가서 주변을 정리하라고 조언했습니다. 그것은 죽음을 준비하라는 의사들의 신호이죠. 이 말은 앞으로 10년간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단지 몇달 동안에 다 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모든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 지어서 가족들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작별인사를 하라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저는 하루종일 그 진단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늦게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의사들은 내시경을 목 아래로 넣어 위와 장을 지나 췌장 안에 바늘을 찔러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종양에서 몇 개의 세포들을 떼냈습니다. 저는 마취된 상태였는데, 그곳에 있던 제 아내가 나중에 말해주더군요. 현미경 아래에 있는 세포들을 검사할 때 주치의가 울기 시작했다고 말입니다. 매우 희귀한 형태의 췌장암이어서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고맙게도 저는 지금 괜찮습니다.

이 때가 제가 죽음을 가장 가까이 직면했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앞으로 수십 년간 살아가는 동안에 죽음을 가장 가까이 마주했던 경우이기를 소망합니다.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나니, 죽음이 유용하긴 했지만 순전히 지적인 개념이었을 때보다 좀더 확신을 갖고 여러분께 지금 이런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죽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기를 바라는 사람들조차도 천국에 가고자 죽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인생의 종착역입니다.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죠. 또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삶이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품이기 때문이죠. 죽음은 삶을 변화시키는 원천입니다. 죽음은 신세대가 나아갈 길을 만들기 위해 구세대를 밀어냅니다. 바로 지금, 신세대는 여러분이죠. 하지만 언젠가, 지금으로부터 머지 않은 장래에 여러분도 점점 구세대가 될 겁니다. 그리고 밀려나고 말겠죠. 너는 극적이어서 미안합니다만 그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남의 인생을 대신 사느라고 여러분의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결과에 맞춰 사는 도그마(맹목적인 믿음)의 덫에 걸리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의 의견에서 나온 잡음이 여러분 내면의 소리를 덮어버리도록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여러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어떻게든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외의 모든 것은 부수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제가 어릴 적에 지구백과(The Whole Earth Catalog)이라고 하는 대단한 출판물이 있었습니다. 저희 세대에게는 권위있는 책 중의 하나였죠. 그 백과사전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멘로 파크에 살던 스튜어트 브랜드라는 사람이 만들었습니다. 그는 시적인 감각을 가지고 그것에 생명을 불어넣어 흥미롭게 만들었습니다. PC나 데스크탑이 출시되기 이전인 1960년대 후반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전부 타자기와 가위,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이용해서 만들었죠. 그것은 Google이 등장하기 35년 전의 책으로 된 Google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지구백과는 깔끔한 장식들과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넘쳐 나는 이상적인 것이었습니다.

스튜어트와 그의 팀은 지구백과를 몇 차례 더 발간하다가 개선이 되었을 때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그 때가 1970년대 중반이었고 제가 여러분의 나이쯤 됐을 때였습니다. 최종판의 뒷면에는 이른 아침의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도보여행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음직한 그런 종류의 사진이 있었죠. 아래 쪽에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그들이 서명한 듯한 고별 메시지였지요. "Stay hungry. Stay foolish." (끝없이 부족해 하고, 끝없이 미련한듯 도전하십시오.

저는 제 자신이 항상 그렇게 살기를 바라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졸업을 하고 새로운 시작을 하려는 여러분을 위해 그것을 소망해 봅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끝없이 부족해 하고 , 끝없이 미련한 듯 도전하십시오.)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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